나의 이야기

[스크랩] 대마도 짧지만 긴 여행의 추억

따슨샘 2010. 4. 12. 17:12

  

대마도 1박2일간의 짧은 여정 그러나 긴 추억

 

새벽두시 정막은 사라지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옆에는 검은색 배낭에 옷가지와 상비약 그리고 여권이 정해진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추억을 남길요량으로 카메라의 베터리와 메모리카드를 챙긴다.

 

아직은 쌀쌀한 새벽바람맞으며 무슨일인가 궁금한듯 잠에서 깬 다랑이(챠우챠우)가

꼬리를 흔들며 기대에찬 시선을 보내지만 이내 차에 올라 뻥뚤린 검은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검은색위의 흰색과 노란색선 그리고 회색의 가드래일의 안내를 받으며 안전하게 속도를 내 본다. 

가로등 정열하여 머리숙여 인사하고 12시넘은 신호등 대부분 노란빛으로 껌뻑이며 안전운전 신호하고

가끔 파란빛으로 달려라를 외치고 붉은색으로 멈추기를 알리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간다.

 

이렇게 모인 스물댓명이 하나의 버스로 옮겨타고 충주를 출발 부산으로 향한다.

호호하하 두런두런 삼삼오오 아름다운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버스안을 휘돌던 대화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하나 꺼지는 버스의 조명에 따라 볼륨을 줄이더니 이내 조용해 진다.

가끔 부부싸움이나 술잔기울일 때 말고는 코골던 시간인지라 시차적응이 안되어서 일것이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씨플라워에 몸을 맡긴채 2시간 40여분(이즈하라)을 눈을 감고 가기로 했다.

구명보트는 의자 밑에~~~~ 안전을 위해서 배 밖 출입을 금하고 선내에서는 금연이고~~~

아! 이것 참 아이러니 자신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멘트

선내에서 일어서지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서 1층에서 담배 양주 등을 판매한다고 홍보를~~~ 

덧붙여 내릴즈음에는 카드결제 된다고 또 장사속을 내보이는 센스를 당연하다는 듯 해대는 아가씨? 

우이쉬 자유를 위장한 구속을 하면서 자기네 잇속은 다치리겠다는 거기에 자는 사람들 잠까지 깨우는 

아량을 배풀어주는 정복차림의 아가씨?의 센스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스피커의 또박또박한

안내를 음미하며 걍 눈을 떳다감았다 해본다.

 

선실의 TV는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소리없이 입만 뻥긋뻥끗하며 뇌리의 잠자는 못된성질을 자극하는 동안

출국장에서 잠시만난 감찍한 가이드가 도시락을 전달한다. 마음의 감동을 위해서인지 상표가 어머니 도시락이다.

뭐 그다지 감동도 추억도 없이 씨플라워호의 엔진 소리가 이어졌다 끈어졌다 할 즈음

우리 총무님께서 순서를 정하는 뽑기에서 당당히 1번을 선택해서 1순위로 배에서 내리는 행운을 주었다.

여기서 여행동안 총총한 눈망울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원활한 여행을 위하여 노력한 총무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른쪽에 운전석에 헤어스타일로 한번 얼굴로 또한번 묵묵함으로 다시한번 감동을 주는 두대의 버스로 갈아타고  

함께하신 댓빵님께서 익히 다녀가신 문경새재처럼 아주 쉽게 잘 닦여진 길로 천천히 걸어서 4시간 정도 된다는

카미자카(시라다케 519m 돌머리)의 등산을 시작하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산길을 그대로 이용한 

삼나무(스끼)와  노송(편백-하노끼)나무가 잘 자란 숲을 따라 오르고 또오르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기를 반복하면서  

백악(白嶽, 시라다케) 정상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서로에게 축하의인사도 나누노라니 한무리의 한국분들 또 오른다.

여기에서 함께 정산까지 못오를 줄로만 알았던 김모님과 딸 그리고 또 다른 김모님 이모님 안모님의 선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상을 또 다른 한국의 분들에게 양보하고 풀릴대로 풀린 다리를 이끌고 하산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향했다.

모듬(육해공군 다 준비)으로 준비된 음식을 가져간 쐬주와 함께 맛나게 먹고 숙소로 향하며 조용하고 깨끗한 봄의 정취.

4~5m정도의 아담한 폭의 하천에 비치는 야경과 떼지어 다니는 물고기가 이국적이며 하천벽면의 조선통신사 관련그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숙소에서 샤워로 피곤을 풀고 함께한 몇몇분과 남은 쐬주로 하루를 정리했다.

숙소에서의 또 다른 추억을 선사하신 양모님과 함께 하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ㅎㅎㅎ

 

 

 

그렇게 퍼? 마신 술 덕분?에 잠에서 깨어 띵하는 머리 이끌고 샤워 후 호텔 내의 식당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일행분이 식사중이다. 다른 한국분 일행도 여행의 즐거움을 얘기하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후 면세점에 들러 이것저것 쇼핑히는 데 판매원 모두가 한국분인가보다 걍 한국의 어느 쇼핑센터와 같다.

바글바글 거리는 쇼핑객의 모두가 한국분들이다. 이제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를 잘 구별 못하겠다. 

 

벗꽃핀 이즈하라 시청앞에서 출발하여 인공으로 운하를 만들었다는 공사중인 만제키바시를 차로 지나 와타츠미신사.

울창한 숲과 산책로 가운데 토요타마히메(豊玉姬)의 석관묘가 한국사람들로 인하여 생겼다는 돈 바구니와 함께 서있고

아래로 토요타마 쵸의 상징이며 일본 건국신화의 발생지이기도한 바다신을 모신 가장 오래된 와타츠미신사가 바다를 통해 신이 들어온 것처럼 정면의 바다속에 서부터 토리이(신사 문)가 바다에 3개 육지에 2개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일본의 보통 토리이는 남쪽을 향하고 있지만 이 토리이만 한국(가야, 경주)을 향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조상과 역사와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며 요즘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일본이 하고 있음을 새삼 생각케 한다.

 

 

 

깨끗하고 고운 모래와 돌위의 소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인  미우타해수욕장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마냥 신나게 뛰고

요상하게 생긴 해물에게 관심도 갖어가며 영화에서의 주인공인냥 멋진 포즈로 추억을 담으며 신나했다.

한국의 부산이 보인다는 전망대에서 애써 휴대전화 안테나가 서는곳을찾아 보며 제주도 보다 가까운 이곳 대마도

진정으로 우리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곳 대마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기로 하고 일본의 초등학생 교과서에 

독도가 자기내 영역이라고 표시하여 버젓이 거짓을 고하는 이네들에게 안타까운 마음마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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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안내지도

  

여행지에서 만난 추억들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뉘어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며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단다.

 

 

삼나무(스끼)와  노송(편백-하노끼)나무가 잘 자란 숲과 솔개

 

 

코인을 넣고 운세쪽지를 받아 좋은 내용은 가져가고 나쁜내용은 앞쪽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예전에 다방에서 흔히 심심풀이로 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복불복, 상술이라고나 할까? 

 

일본 초대 신무천황의 탄생설화가 있는 와타즈미 진자의 토요타마히메(풍옥희)분묘

토요타마 히메는 일본 초대천황 신무의 할머니란다. 

바다의 반대방향으로 길게 뿌리를 드리운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유일하게 한국(가야, 경주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와타즈미 진사의 도리이

 일본건국신화에 나오는 천신의 아들이 형의 낚시몰래하다 빠뜨린 바늘을 찾아 갔다가 용궁의 공주와 결혼하여 만삭의 아내와 육지로 나와 출산을 하게되는데 절대로 엿보지말라는 부탁을 어기고 아내가 용(구렁이)모습으로 출산하는것을 보아 결국아내는 바다로 돌아가고 그아이가 일본완가의 시조인 신무천왕의 아버지가 된다는 설화가 깃든곳으로 이 와타지미 신사는 그 해신과 아들을 모시는 가장 오래된 신사라고 한다. 일본내의 모든 신사의 도리이는 남쪽을 향하는 반면 이곳만 유일하게 한국을 향하고 있다.

   

 

일본의 꼭 우리의 해태상 비슷한 고마이누가 신사 좌우측에 버티고 있다.

입구 좌측에 입을 다문것은 암컷이고 입구 우측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숫컷이다.

좀더 정확한 근거를 위하여 은밀한 부분을 촬영해 보았다. 숫컷의 그것은 잘생겼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그림이 아름답게 묘사된 물고기가 떼지어 노니는 하천과 

마을과 함께 하는 일본의 공동묘지

그리고 자판기의 모습(엔화를 안가져가 그림의 떡 이었다) 

 

 대마도의 일반적인 개요

 


동경129도, 북위34도
한국에서 49.5km(일본에서 147km로 한국에 훨씬 가깝다.)
709㎢ (거제도의 1.5배, 울릉도의 10배) 동서 폭 18km, 남북 82km
본 섬 2개(상, 하 대마도)와 109개의 섬으로 이루어 짐 (유인도는 5개)
약 4만 5천명
나가사키 현 소속, 2군 6정으로 구성. 2004년 3월 1일부터 6개 정이 쓰시마 시(對馬市)로 통합 예정임
  2군<郡> - 카미아가타 군 (上縣郡) / 시모아가타 군 (下縣郡)
6정<町> - 카미쓰시마 쵸 (上對馬町) / 카미아가타 쵸 (上縣町) / 미네 쵸 (峰町)
               도요타마 쵸 (豊玉町) / 미쯔시마 쵸 (美津島町) / 이즈하라 쵸 (嚴原町)
임업과 어업, 서비스업
   
섬 전체의 88%가 산지이며 주민들은 주로 임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2개의 군과 6개의 정(町)으로 구분된 지역 중 이즈하라가 제일 큰 도시이며 히타카츠 가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대마도의 인구 중 약 2만명 정도가 이즈하라에 거주하 고 있다. 대마도는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대마도의 삼나무를 모두 베어내면 일 본인구가 약 4년간 벌어들이는 외화수익과 맞먹는다고 한다.  
 
대마도는 원래 옛부터 한국에 소속된 땅으로 조선시대 중기까지 경상도에 포함되어 있었고 대마도의 영주는 조선의 벼슬을 받았다. 대마도라 부르는 설에 대해 여러 가지 유래설 들이 있지만 주된 세 가지 유래로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왜인전에 진도(津島-일어로 쯔시마)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어원이 되어 대마도라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삼한인(옛 한민족)들이 두 개의 섬이라 하여 '두시마' 라 고 불렀다는 설, 일본사람들이 이 섬이 마치 두 마리 말이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대마(對馬) - 즉 쓰시마라고 불렀다는 것이 어원이라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세 번째 설이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설이 진짜라 말하므로...)
 
한일간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의 창구로서 정거장 역할을 한 곳
1419년 이종무 장군이 정벌하여 대마도주에게 항복을 받은 곳
왜구의 조선침략 근거지로서 우리에겐 악연
조선의 민간외교관 안용복이 감금당한 곳
을사조약을 반대한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이 끌려가서 단식분사한 곳
박제상 비, 조선역관사 비, 학봉 김성일 시비가 있는 곳
임진왜란 전까지 친조선이었으나 토요토미 히데요시 집권후 완전히 친막부로 기울어졌음

매년8월 첫째 토, 일요일 아리랑축제와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즈하라 시내에서 열리고 있다.

출처 : 수안보이야기 (수안보중학교 25회 추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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